"'OO주의'가 무엇인지 공부나 먼저 하시고 말씀하시죠."
"공부는 셀프, 'OO주의'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
위의 말은 최근 스스로를 'OO주의자'라고 칭하는 이들이 비판받을 때 제시하는 전형적인 답변 중 일부이다. 그런데 이러한 답변이 유효한 답변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OO주의자'라고 칭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OO주의'를 잘 알고 있을 필요도, 공부할 필요도 없다. 위의 답변은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악당들의 전형적인 술책일 뿐이다. 이러한 술책에 넘어가면, 문제의 핵심만 흐려질 뿐이다. 간단한 예를 통해 왜 저런 답변을 수용하면 안 되는 지 살펴 보자.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우리는 1930-40년대의 '나치주의자' 혹은 '국가사회주의자'로 불리는 이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스스로를 '국가사회주의자'라고 칭한 이들은 유럽 전역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수많은 건축물, 예술품을 파괴하고 도적질했으며, 사상을 통제하였다. 이러한 행위만으로도 우리는 나치주의자를 악당 혹은 인류 문명의 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을 하기 위해 20세기 초중반의 국가사회주의를 열심히 공부할 필요는 없다. 국가사회주의가 무슨 사상이건 관계없이, 스스로를 국가사회주의자료 규정한 이들이 저지른 행동이 비판의 근거인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행동에 대해 국가사회주의자 내부에서 비판이 없었다는 점은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정말로 문제 있는 집단임을 보여준다. 설령 국가사회주의가 내용면으로는 굉장히 성스러운 사상이라고 해도 국가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다.
2016년 9월 30일 금요일
헴펠의 까마귀 역설(The Paradox of Ravens)
가설을 시험하는 중에 얻은 경험적 자료가 (가설을) 입증하는(confirming) 성격을 지니는 지, 반입증(disconfirming)하는 성격을 지니는지에 대한 판단은 실제 과학의 연구에서는 어떠한 지체도 없이, 그리고 넓은 의견의 일치 속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입증과 반입증의 일반적 기준을 제공하는 명시적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상황은 실제 과학연구에서 연역추론을 사용하는 방식과 비교할 만하다. 그 방식 역시 명시적으로 기술된 논리적 추론 체계를 거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당한 연역추론의 기준을 형식논리학에서 제시할 수 있고, 또 제시해 온 것과는 달리, 입증과 반입증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이론이 없는 듯하다. – 칼 구스타프 헴펠(Carl Gustav Hempel, 1965: 4/t20)[1]
가설은 무엇에 의해 입증되는가?
과학에서 가설(hypothesis)의 입증(confirmation)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다양한 과학적 가설을 생각해 보라. 가설은 증거(evidence)에 의해 입증될 때에만, 수용할 수 있으며 주장 가능하다. 그렇기에 어떤 가설을 지지하는 과학자는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모으려 하고, 그 가설을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그것을 뒤집는 증거를 모으려 한다. 그렇기에 과학 논문을 읽다 보면 ‘증거’나 ‘지지’와 같은 표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선 인용문에서 헴펠이 말한 바와 같이 입증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철학적 이론은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e는 h의 증거이다” 혹은 “e는 h를 입증한다”가 참이 되는 조건을 규정하는 이론 중 철학자 (거의) 모두가 지지하는 받은 이론은 없다. 실제 많은 과학자들이 “이 가설은 입증되었다”, “이 실험 결과는 해당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이다”와 같이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입증 이론이 제시된 적은 없다.
어차피 철학자라는 족속이 남의 견해에 쉽게 동조하지 않으니 불일치는 당연하다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렇다 해도 과학철학자들이 어떤 입증 이론들을 제안하였는지, 그리고 그 이론들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일단 과학철학 분야 선전용으로 쓰는 글인만큼 자극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질문: 노란 송충이의 발견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을 입증하는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본인의 직관에 따라 대답해 보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다. 노란 송충이가 까마귀의 색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노란 송충이는 해당 가설과 무관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직관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할 까마귀 역설은 노란 송충이의 발견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노란 송충이는 물론이고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것, 이를테면 보라색 암소, 하얀 분필, 빨간 스틸레토 등이 “모든 까마귀가 검다”를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어떻게?
가설은 무엇에 의해 입증되는가?
과학에서 가설(hypothesis)의 입증(confirmation)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다양한 과학적 가설을 생각해 보라. 가설은 증거(evidence)에 의해 입증될 때에만, 수용할 수 있으며 주장 가능하다. 그렇기에 어떤 가설을 지지하는 과학자는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모으려 하고, 그 가설을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그것을 뒤집는 증거를 모으려 한다. 그렇기에 과학 논문을 읽다 보면 ‘증거’나 ‘지지’와 같은 표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선 인용문에서 헴펠이 말한 바와 같이 입증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철학적 이론은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e는 h의 증거이다” 혹은 “e는 h를 입증한다”가 참이 되는 조건을 규정하는 이론 중 철학자 (거의) 모두가 지지하는 받은 이론은 없다. 실제 많은 과학자들이 “이 가설은 입증되었다”, “이 실험 결과는 해당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이다”와 같이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입증 이론이 제시된 적은 없다.
어차피 철학자라는 족속이 남의 견해에 쉽게 동조하지 않으니 불일치는 당연하다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렇다 해도 과학철학자들이 어떤 입증 이론들을 제안하였는지, 그리고 그 이론들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일단 과학철학 분야 선전용으로 쓰는 글인만큼 자극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질문: 노란 송충이의 발견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을 입증하는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본인의 직관에 따라 대답해 보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다. 노란 송충이가 까마귀의 색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노란 송충이는 해당 가설과 무관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직관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할 까마귀 역설은 노란 송충이의 발견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노란 송충이는 물론이고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것, 이를테면 보라색 암소, 하얀 분필, 빨간 스틸레토 등이 “모든 까마귀가 검다”를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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