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0일 금요일

헴펠의 까마귀 역설(The Paradox of Ravens)

가설을 시험하는 중에 얻은 경험적 자료가 (가설을) 입증하는(confirming) 성격을 지니는 지, 반입증(disconfirming)하는 성격을 지니는지에 대한 판단은 실제 과학의 연구에서는 어떠한 지체도 없이, 그리고 넓은 의견의 일치 속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입증과 반입증의 일반적 기준을 제공하는 명시적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상황은 실제 과학연구에서 연역추론을 사용하는 방식과 비교할 만하다. 그 방식 역시 명시적으로 기술된 논리적 추론 체계를 거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당한 연역추론의 기준을 형식논리학에서 제시할 수 있고, 또 제시해 온 것과는 달리, 입증과 반입증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이론이 없는 듯하다. – 칼 구스타프 헴펠(Carl Gustav Hempel, 1965: 4/t20)[1]


가설은 무엇에 의해 입증되는가?

  과학에서 가설(hypothesis)의 입증(confirmation)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다양한 과학적 가설을 생각해 보라. 가설은 증거(evidence)에 의해 입증될 때에만, 수용할 수 있으며 주장 가능하다. 그렇기에 어떤 가설을 지지하는 과학자는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모으려 하고, 그 가설을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그것을 뒤집는 증거를 모으려 한다. 그렇기에 과학 논문을 읽다 보면 ‘증거’나 ‘지지’와 같은 표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선 인용문에서 헴펠이 말한 바와 같이 입증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철학적 이론은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e는 h의 증거이다” 혹은 “e는 h를 입증한다”가 참이 되는 조건을 규정하는 이론 중 철학자 (거의) 모두가 지지하는 받은 이론은 없다. 실제 많은 과학자들이 “이 가설은 입증되었다”, “이 실험 결과는 해당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이다”와 같이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입증 이론이 제시된 적은 없다.
  어차피 철학자라는 족속이 남의 견해에 쉽게 동조하지 않으니 불일치는 당연하다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렇다 해도 과학철학자들이 어떤 입증 이론들을 제안하였는지, 그리고 그 이론들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일단 과학철학 분야 선전용으로 쓰는 글인만큼 자극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질문: 노란 송충이의 발견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을 입증하는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본인의 직관에 따라 대답해 보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다. 노란 송충이가 까마귀의 색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노란 송충이는 해당 가설과 무관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직관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할 까마귀 역설은 노란 송충이의 발견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노란 송충이는 물론이고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것, 이를테면 보라색 암소, 하얀 분필, 빨간 스틸레토 등이 “모든 까마귀가 검다”를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어떻게?



니코 기준과 동치 조건

  까마귀 역설은 다음의 두 당연해 보이는 전제들로부터 출발한다.

    (NC) 보편조건문 형태의 가설은 전건 및 후건을 모두 만족하는 대상에 의해 입증되고, 전건을 만족하나 후건은 만족하지 않는 대상에 의해 반입증된다.

    (EC) 두 동치문장 중 하나를 입증(또는 반입증)하는 것은 다른 하나의 문장도 입증(또는 반입증)한다

  여기서 전제 (NC)는 프랑스 철학자 장 니코(Jean Nicod)의 이름을 따서 ‘니코 기준(Nicod’s criterion)’이라 부른다. 이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일단 문제의 가설인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기호논리학의 표기법에 따라 다음과 같은 보편조건문으로 기술할 수 있다.

        S1: (x)(Rx ⊃ Bx)[2]

니코 기준에 따르면 제시된 가설은 만일 대상 a가 R이고 B이면("Ra&Ba") a에 의해 입증된다. 반면, 대상 a가 R이지만 B가 아니라면("Ra&¬Ba") 가설은 a에 의해 반입증된다. 구체적으로 말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은 검은 까마귀인 대상을 발견하면 입증되고, 검지 않은 까마귀를 발견하면 반입증된다는 것이다(Hempel 1965: 10-11/t31-33). 이는 입증에 관하여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주장인 것 같다.
  다음으로 (EC)는 '동치 조건(Equivalence Condition)'이라 부른다. 동치 조건은 한 가설의 입증은 그것의 정식화 방식과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왜 이 논제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문제의“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은 이와 동치인 “검지 않은 까마귀는 없다”와 같이 다르게 정식화할 수 있다. 이를 기호논리학의 표기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S2: ¬(∃x)(Rx & ¬Bx)

아니면 좀 더 멋을 부려서 아래와 같이 기술할 수도 있겠다.

        S3: (x)((Rx &¬Bx)⊃(Rx &¬Rx))

동치 조건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어떤 대상 a가 S1을 입증할 때, a는 S2 및 S3도 입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역시 매우 그럴듯한 주장이다. 가설을 다르게 정식화 한다고 해서 다른 증거를 가진다는 주장은 이상하지 않은가? 니코 기준을 수용한 상태에서 니코 기준을 적용한다면, S3은 그 어떤 입증 사례도 가질 수 없다는 황당한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후건인 “(Rx &¬Rx)”이 모순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 동치 조건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가설의 입증은 그 가설과 동치인 여러 형식화 중에서 어떤 정식화를 고려하느냐에 의존한다”와 같은 이상한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이상한 정도를 넘어서 과학적 탐구를 이해하기 어려운 활동으로 만든다. 우리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위해서 경험적으로 입증된 가설을 사용한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입증된 가설을 사용하는 추론을 건전하다고 여긴다. 만약 과학적 추론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가설을 사용한다면 그러한 추론은 불건전하며, 그러한 추론의 과정에서 산출된 설명이나 예측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입증된 가설이 설명과 예측을 위해 사용될 때, 그 가설이 설명과 예측의 맥락에 맞추어 다른 방식으로 정식화 되는 일은 매우 흔하다. 예측의 맥락에서 통상 경험적으로 입증된 가설은 연역논증의 전제가 되고 그 논증의 결론은 예측할 사건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연역논증은 “타당한 논증은 전제 중의 일부 또는 전체를 그와 동치인 다른 진술로 대체하더라도 여전히 타당하다”는 형식논리학의 원리를 따른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추론 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다르게 정식화하여 사용한다(Hempel 1965: 13/t35-36).[3]
  이제 우리가 동치 조건을 거부하는 입증 개념을 채택한다고 하자. 일단 문장 S1을 입증하는 많은 증거가 있다면, S1에 근거하여 추론하는 일은 건전하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S1과 동치인 S2, S3과 같은 것들은 그 정식화 문제 때문에 입증 사례를 가지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S2나 S3을 과학적 추론에 사용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 S2, S3은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용한 추론은 불건전한 추론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벤젠은 섭씨 80.1도에서 끓는다((x)(BZx⊃Bx))"는 가설이 수많은 벤젠 샘플을 통해 잘 입증되었다고 하자. 동치 조건을 거부한다면 이 자료들은 동치인 가설 “섭씨 80.1도에서 끓지 않는 물질은 벤젠이 아니다((x)(¬Bx⊃¬BZx))"를 입증하지 못한다. 즉, 우리는 벤젠이 80.1도에서 끓는다는 잘 입증된 가설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80.1도가 아닌 다른 온도에서 끓는 물질들을 가리켜 “저건 벤젠이 아니다”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후자의 가설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적 추론의 근간을 흔들어 버린다. 따라서 동치조건은 입증의 기준이 만족하여야 하는 필요조건이 되어야 한다.

까마귀 역설

  이처럼 니코 기준과 동치 기준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리고 “모든 까마귀는 검다”와 동치인 가설,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를 살펴보자. 이 가설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S4: (x)(¬Bx⊃¬Rx)

  니코 기준에 따라 이 가설은 어떤 대상 a가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니면("¬Ra&¬Ba"), a에 의해 입증된다. 그런데 여기에 동치 조건을 적용하면, a는 S4와 동치인 가설인 S1,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한다.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대상(예. 빨간 사과)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S1, S3과 동치인 다음의 문장까지 고려해 보자.

        S5: (x)((Rx∨¬Rx)⊃(¬Rx∨Bx))

a가 검은색이고 까마귀가 아닌 경우("¬Ra&Ba"), 역시 가설의 전건과 후건을 만족하므로 a는 해당 가설을 입증한다. 다시 말해 검은 하이힐도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하는 사례가 되는 것이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에 대한 가설과 사례 사이의 관계를 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검다검지 않다
까마귀이다Ra&Ba
가설을 입증
Ra&¬Ba
가설을 반입증
까마귀가 아니다¬Ra&Ba
가설을 입증
¬Ra&¬Ba
가설을 입증

니코 기준과 동치 조건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전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로부터 나온 결론,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것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한다”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을까? 니코 기준과 동치 조건 중 최소한 하나는 거부해야 하나?

  이 역설을 제안한 헴펠은 매우 과감하게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것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이러한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심리적 착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헴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역설을 빠져나갈 길은 없는 것일까?


역설의 숨겨진 가정

  까마귀 역설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경험 가설을 보편조건문 형태의 가설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가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경험 가설, “모든 나트륨 염은 노란색을 내며 탄다”는 아무런 문제 없이 “(x)(Sx⊃Yx)”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이 수정될 수 있다면 역설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다시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이 가설은 사실 “까마귀가 있다”는 존재 주장을 함축하고 있는 것 아닐까? 다시 말해 실제로 주장하는 내용은 “모든 까마귀는 검으며 까마귀는 존재한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는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고 검지 않은 것이 있다”가 된다. 이를 정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S1': (x)(Rx⊃Bx)&(∃x)Rx

        S4': (x)(¬Bx⊃¬Rx)&(∃x)¬Bx

S1'과 S4'는 동치가 아니다. 따라서 S1'은 오직 “Ra&Ba"에 의해서만 입증되고, S4'은 오직 “¬Rd&¬Bd"에 의해서만 입증된다. 이제 역설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헴펠은 이와 같은 해결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받아들이면 이론적 논증에서 허용하는 많은 논리적 추론이 부당한 추론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든 나트륨 염은 노란 불꽃을 내며 탄다”와 “노란 불꽃을 내며 타지 않는 것은 나트륨 염이 아니다”는 논리적으로 동치이지만, 존재 구절을 덧붙이면 동치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자의 가설을 바탕으로 후자의 가설을 타당하게 추론한다. 그러니까 어떤 물질을 분젠 버너에서 태웠을 때, 빨간 불꽃을 보여주면, 나트륨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렇게 존재 구절의 덧붙임은 과학적 가설의 자유로운 활용을 막는다(Hempel 1965: 16/t41).
   다음으로 경험과학에서 일반가설의 통상적 정식화는 존재구절을 포함하지 않거나 존재구절을 분명하게 결정해 주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x가 존재한다”라는 존재 구절에서 ‘x'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 지 명확하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에게 특정 물질을 투여한 후 양성 피부반응이 나타났다면 그 사람은 디프테리아에 걸린 것이다”라는 가설을 보라. 여기서 존재 양화사를 어디에 붙여야 하는가? 특정 물질을 투여한 사람? 투여 후 양성 피부반응을 보인 사람? 어떻게 결정하건 각각은 가설을 달리 해석하게 만들며, 이러한 해석들은 옳다고 간주하기 어렵다(Hempel 1965: 16-17/t41).
   무엇보다 상당수의 보편가설은 존재구절을 갖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특정한 조건을 언급한다고 해서 그러한 조건이 있다는 주장을 함축할 필요는 없다. “인간과 유인원이 교접하면, 그 후손은 이러저러한 특징을 갖는다”는 가설을 보자. 이 가설은 언급한 이종교배가 실제로 발생할 것이라는 존재 함축을 가지지 않는다. “약 6550만년 전에 소행성이 충돌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와 같은 가설이 그러하듯이. 결론적으로 존재구절의 첨가는 바람직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Hempel 1965: 17/t41-42).
   이러한 반론에 대해 보편 가설은 존재구절을 함축하지는 않으나 적용영역의 한정을 포함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겠다. “모든 까마귀는 검은색이다”는 까마귀에 관한 가설이지, 검은색 또는 모든 대상들에 대한 가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반가설은 그 가설의 특정한 적용영역을 지적함으로써 통상적인 보편조건문으로 보완하여 표현 가능하다. 즉 “모든 까마귀는 검은색이다”를 “(x)(Rx⊃Bx)"또는 그와 동치인 문장으로 나타내고 이 가설의 적용영역을 ‘까마귀의 집합’으로 규정하여 보완할 수 있다. 이러면 적용 영역이 까마귀에 한정되므로 까마귀 역설을 피할 수 있으며, 처음 해결책이 가진 문제 역시 회피할 수 있다.
  그러나 헴펠은 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반론을 펼친다. 우선 실제로 과학에서 일반가설을 사용할 때에는 적용영역에 대해 진술하지 않으며, 적용영역의 도입은 상당한 임의성 역시 도입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나트륨 염은 노란 불꽃을 내며 탄다”는 가설을 적용할 때에는 나트륨 염을 포함하는지, 노란 불꽃을 내면서 타는 지의 여부가 알려지지 않은 물질에도 적용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물질이 노란 불꽃을 내지 않으면, 가설은 이 물질에 나트륨 염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립하는 데에 기여한다. 만약 과학적 가설의 적용영역이 한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실험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덧붙여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가설을 정식화하면서 적용영역을 일관되게 하려면 상당한 논리적 복잡성이 산출될 수 밖에 없다. 헴펠이 보기에 과학의 이론적 과정에는 그에 해당되는 것은 없다. 과학자는 이론적 과정에서 적용영역에 대한 고려 없이 가설을 다양하게 논리적으로 변형하고 추론한다. 다시 말해 일반 가설의 적용영역을 한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Hempel 1965: 17-18/42-43).


역설은 심리적 환상

  헴펠의 말처럼 과학적 탐구에서 붉은 펜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한다고 하자.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입증을 매우 불편해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편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헴펠은 까마귀 역설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하나, 논리적 고려와 실질적 고려를 혼동하는 우리의 심리적 경향이 까마귀 역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했던 역설의 대응책 중 “모든 P는 Q이다”라는 과학적 가설의 적용영역이 P의 집합이라는 관점을 떠올려 보자. 가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 가설이 특정한 대상들의 집합에 적용가능한지에 맞추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설의 주장과 실제로 제한을 가하는 것은 모든 대상(가설이 나타나는 변항의 논리적 유형의 범위, 나트륨 가설에서는 모든 물질)에 대해서이다. 이 가설은 세계에P라는 성질을 가지지만 Q라는 성질을 갖지 않는 대상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모든 대상은 이 가설에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일반 가설이 언급하지 않는 대상은 전혀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논리적으로 고려해야할 집합(모든 대상)과 우리의 관심에 기반한 실질적 고려(까마귀 가설에서는 까마귀의 집합)을 혼동하기 때문에 나타난다(Hempel 1965: 18/43-44).
  둘, 우리는 일상적으로 대개 주어진 증거 e 단독으로 가설 h와의 관계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습관이 가설과 증거 사이의 입증적 관계를 판단하는 데에 문제를 불러온다. “모든 나트륨 염은 노란빛을 내며 탄다”는 가설을 생각해 보자. 얼음 조각을 불꽃에 가져갔는데, 노란 불꽃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자. 이 결과는 “노란빛을 내며 타지 않는 것은 나트륨 염이 아니다”를 입증하며, 동치 조건에 의해서 본래의 주장을 입증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을 이러한 입증을 역설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다음의 경우에는 어떠할 지 생각해 보라.
  그 성분을 알지 못하는 어떤 대상을 불꽃으로 가져갔지만 불꽃이 노랗게 변하지 않았고, 이후 분석을 해보니 그것에는 나트륨 염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자. 이는 처음의 가설을 토대로 했을 때, 예상되었던 바 그대로이며 가설의 입증 사례이다. 앞선 예와의 차이점은 단 하나, 전자의 사례에서는 시험 대상이 얼음이었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고, 얼음이 나트륨 염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처음 예는 우리에게 새로운 증거가 되지 못한다. 문제의 가설은 불꽃이 노란색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 물질이 어떤 나트륨 염도 포함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불꽃이 노란색으로 변한다면, 그 가설은 그 물질에 대해서 어떠한 제약도 가하지 않기 때문에, 실험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가설에 부합한다. 이게 바로 “모든 나트륨 염은 노란빛을 내며 탄다”가 주장하는 바이다.
  우리는 대개 주어진 증거 e 단독으로 가설 h와의 관계를 판단하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여러 정보들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우리는 e와 부가적인 정보들을 종합하여 구성한 증거를 h와 비교하여 판단한다. 그렇기에 이미 얼음인 것을 알고 실험한 것과 얼음인 것을 모르고 실험한 것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가적 지식에 대한 암묵적 지시를 피하도록 조심하고, 입증의 개념에 적합한 방식으로 증거가 입증하는 특징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Q. a라는 대상에 대해, a는 불꽃의 색을 노란색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며 또한 나트륨 염이 아니라는 사실이 주어졌을 때, a는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를 구성하는가?

헴펠은 a가 얼음이건 다른 물질이건 상관없이 ‘그렇다’고 대답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면 역설은 사라진다. (Hempel 1965: 19-20/t44-46)
   좀 더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까마귀 역설은 결국 까마귀가 아닌 대상은 모두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e가 단 하나의 대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검은색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e는 “모든 대상은 검은색이다”라는 가설을 지지한다. 나아가 e는 상대적으로 약한 가설인 “모든 까마귀는 검다”도 지지한다.[4] 모든 대상이 검은색은 아니라는 우리의 사실적 지식은 역설을 발생시킬 것만 같은 인상을 주지만 그러한 인상은 논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의 직관이다(Hempel 1965: 20/t46-47). 검은색 대상은 “모든 대상은 검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단지 여러 검지 않은 대상에 의해 “모든 대상은 검다”는 반증되었을 뿐이며, 그러한 반증이 일어났다는 점이 검은색 대상이 가설과 증거 사이의 입증적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입증의 역설은 문제에 대한 잘못된 직관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까마귀 역설 요약
1) 니코 기준과 동치 조건을 받아들이면, 검지 않고 까마귀도 아닌 대상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한다는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NC) 보편조건문 형태의 가설은 전건 및 후건을 모두 만족하는 대상에 의해 입증되고, 전건을 만족하나 후건은 만족하지 않는 대상에 의해 반입증된다.
  (EC) 두 동치문장 중 하나를 입증(또는 반입증)하는 것은 다른 하나의 문장도 입증(또는 반입증)한다
2) 과학적 탐구에서 증거와 가설 사이의 입증적 관계는 논리적으로 분석되어야 하며, 그렇기에 과학적 가설의 적용 영역은 한정되지도 않고, 우리의 실질적 관심사나 부가적 정보에 영향 받아서는 안 된다.
3) 결국 까마귀 역설은 역설이 아니며, 빨간색 스틸레토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하는 증거이다.

덧붙임 1: 헴펠은 입증의 문제에서 양적인 고려는 하지 않았다. 어떤 대상 a가 가설 h를 입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며, 그것이 가설을 얼마나 잘 입증하는지, 혹은 b와 비교하여 더 잘 입증하는지는 논하지 않는다. 입증의 양적 문제는 나중에 베이즈주의 입증 이론과 같은 것을 다룰 때 살펴 보도록 하자.

덧붙임 2: 나는 헴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 까마귀 역설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그리고 이 역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지는 나중에 여유가 되면 글 쓰겠음.


참고문헌

Hempel, Carl G. (1965), Aspects of Scientific Explanation and Other Essay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New York: The Free Press. 번역 『과학적 설명의 여러 측면 그리고 과학철학에 관한 다른 논문들』, 2011, 전영삼, 여영서, 이영의, 최원배 역, ㈜나남: 경기도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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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앞의 숫자는 원서의 쪽수이며, ‘t'이 후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 수를 뜻한다.
[2] "임의의 대상 x에 대해서, 만일 x가 R이면, x는 B이다”
[3] 이를테면 이상기체 상태방정식 pV=NkT를 목적에 맞게 pV/Nk=T, p=NkT/V와 같이 다른 방식으로 정식화하여 기체의 온도나 부피를 계산하고 예측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4]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언급하면, 주장의 ‘강함’과 ‘약함’ 개념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P 와 P&Q에 대해 P&Q는 P를 함축하나 P는 P&Q를 함축하지 않는다. 이 경우, P&Q는 P보다 강한 가설이며 P는 P&Q보다 약한 가설이다. “강한” 주장은 잘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강한 주장이 아니라, 논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너무 강한 주장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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