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0일 금요일

'주의(-ism)'와 '주의자(-ist)'

  "'OO주의'가 무엇인지 공부나 먼저 하시고 말씀하시죠."

  "공부는 셀프, 'OO주의'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

  위의 말은 최근 스스로를  'OO주의자'라고 칭하는 이들이 비판받을 때 제시하는 전형적인 답변 중 일부이다. 그런데 이러한 답변이 유효한 답변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OO주의자'라고 칭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OO주의'를 잘 알고 있을 필요도, 공부할 필요도 없다. 위의 답변은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악당들의 전형적인 술책일 뿐이다. 이러한 술책에 넘어가면, 문제의 핵심만 흐려질 뿐이다. 간단한 예를 통해 왜 저런 답변을 수용하면 안 되는 지 살펴 보자.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우리는 1930-40년대의 '나치주의자' 혹은 '국가사회주의자'로 불리는 이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스스로를 '국가사회주의자'라고 칭한 이들은 유럽 전역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수많은 건축물, 예술품을 파괴하고 도적질했으며, 사상을 통제하였다. 이러한 행위만으로도 우리는 나치주의자를 악당 혹은 인류 문명의 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을 하기 위해 20세기 초중반의 국가사회주의를 열심히 공부할 필요는 없다. 국가사회주의가 무슨 사상이건 관계없이, 스스로를 국가사회주의자료 규정한 이들이 저지른 행동이 비판의 근거인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행동에 대해 국가사회주의자 내부에서 비판이 없었다는 점은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정말로 문제 있는 집단임을 보여준다. 설령 국가사회주의가 내용면으로는 굉장히 성스러운 사상이라고 해도 국가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설파했던 '대동아공영권' 혹은 '오족협화론'과 같은 주장도 마찬가지다. 대동아공영론을 하나의 사상이라고 부르기에는 저열한 것이기는 하지만, 좋은 뜻으로 해석해 줄수는 있겠다. 그러나 스스로를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첨병으로 자처한 이들이 저지른 행동을 생각해보라. 타국에 대한 침략, 학살,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대동아공영론이나 오족협화론을 진지하게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난징대학살을 저지른 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오족협화론을 왜 공부하나?

  같은 논리로 마오주의를 공부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마오주의자'로 칭한 이들이 중국에서, 캄보디아에서 지지른 행동 때문에 마오주의자를 비판할 수 있다. '레닌-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처한 이들이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 소련 공화국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레닌-마르크스주의자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시장주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스스로 '시장주의자'라고 칭한 이들이 불공정 거래를 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탄압하고 다른 사람을 속인다면, 그리고 시장주의자 동료들 중에서 비판자가 없거나 매우 소수라면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주의의 내용과 상관없이 비판받아 마땅하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몰라도 '민주주의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문하고 추방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대해 민주주의자 내부에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작다면, 그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자는 비판받아 마땅한 악당이다. 소위 '민주주의자'를 비판하기 위해 그들이 신성시하는 '민주주의'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

  2016년 9월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페미니스트'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이들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공부나 해라"라고 대응하면서 논점을 흐리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작자들이 남성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자신보다 약자인 남자 어린이들을 괴롭히고, 독립운동가나 노동운동가를 모욕하고, 왜곡된 기사를 쓰며, 공적 자금의 사용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무고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조리돌림해 놓고 무고죄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을 한다면, 페미니즘이 어떤 사상이건 관계 없이 페미니스트는 비판받아야 마땅한 존재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하는 이들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없다면 더욱 그러하다. 페미니즘에 어떤 고매한 사상이 녹아있건 관계없이 현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스트는 그냥 사회의 적일 뿐이다. 남 보고 '공부하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해 보기 바란다.


정리하자면,

1. 'OO주의'의 내용이 'OO주의자'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2. 그렇기에 스스로를 'OO주의자'라고 하는 작자들의 행동을 비판하기 위해서 'OO주의'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
3. 'OO주의자'라고 하는 작자들은 타인에 비판에 대해 'OO주의'를 공부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곱씹어 반성할 필요가 있다. 2016년 9월  현재, 소위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자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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