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욕열의 극복: 젬멜바이스의 도전
헴펠(Carl G. Hempel)은 그의 책, 『자연과학철학(Philosophy Of Natural Science)』에서 헝가리 태생의 의사 젬멜바이스(Ignaz P. Semmelweis, 1818-1865)의 산욕열(childbed fever/puerperal fever) 연구 사례를 통해 과학적 가설(hypothesis)이 어떻게 시험되는지 보여준다.[1] [2]
이야기의 주인공인 젬멜바이스는 1844년부터 1848년까지 5년 동안 비엔나 종합병원에서 산욕열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산욕열은 통상 출산이나 유산 이후 여성 생식기의 감염으로 나타나는 발열성 질환으로 병원에 따라 사망률이 최고 30%에 육박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질환이었다. 여하간 젬멜바이스가 근무하던 비엔나 종합병원에는 두개의 산부인과가 있었는데, 젬멜바이스는 이 병원의 제 1 산부인과 의사 소속 의사로 1산부인과에서 분만하는 산모가 산욕열에 희생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하였다. 1844년에는 제1 산부인과에서 분만한 3,157명의 산모 가운데 8.2%에 이르는 260 명의 산모가 산욕열로 사망하였다. 1845년에는 사망률이 6.8%, 1846년에는 11.4%였다. 이 사망률은 옆 건물에 있는 제2산부인과가 제1산부인과와 거의 같은 수의 산모를 수용했음에도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제2산부인과의 산욕열 사망률은 같은 해에 각각 2.3%, 2.0%, 2.7%였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젬멜바이스는 여러 가설을 검토하였다. 당시 널리 인정받고 있던 한 견해는 산욕열이 해당 지역의 나쁜 공기(혹은 기운)에 의한 전염성 질환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젬멜바이스는 산욕열의 2산부인과에 비해 1산부인과에서 압도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과 들어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이 견해는 산욕열이 비엔나 종합병원에서는 창궐하면서 병원 바깥 비엔나 지역과 비엔나 주변 지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해명할 수 없었다. 산욕열이 콜레라와 같은 유행병이라면 그처럼 장소를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젬멜바이스는 제1산부인과에 입원하기로 되어 있던 산모들 중 일부는 병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병원으로 오던 도중에 진통이 일어나 길에서 분만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가 겪었음에도 노상에서 분만한 산모들의 사망률은 제1산부인과의 평균 사망률보다 훨씬 낮았다.
다른 가설은 제1산부인과 높은 사망률이 정원 초과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젬멜바이스는 산모들이 악명 높은 제1산부인과에 입원 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에 2산부인과가 더 많은 환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 떠돌던 두 가지 비슷한 추측, 환자의 식사와 일반적 간호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두 산부인과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자 버렸다.
1846년에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위원회는 1산부인과에서의 산욕열 유행의 원인은 의학부 학생들의 거친 진찰에 의해 생긴 상처라고 지적했는데, 의학부 학생들은 모두 제 1산부인과에서 산부인과 실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젬멜바이스는 a) 분만 과정에서 자연히 생기는 상처가 거친 진찰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상처보다 훨씬 더 크고, b) 제2산부인과에서 실습하는 조산원도 제1산부인과에서 하는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환자를 진찰했지만 그런 나쁜 결과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c) 조사 위원회의 보고에 따라 의학과 학생의 수를 반으로 줄이고 진찰 횟수도 최소로 줄이는 조치를 취했더니, 사망률은 잠시 떨어지다가 나중에는 전례 없이 높이 올라갔다는 세 가지 사실이 확인되자 이 견해도 버렸다.
한편 여러 가지 심리학적 설명도 검토되었다. 그 중 하나는 제 1산부인과의 건물 구조상 사제가 임종에 가까워진 산모에게 종부 성사를 행하려고 임종실에 갈 때에 다섯 개의 병실을 지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니까 종을 울리는 사자(侍者)를 따라 사제가 병실을 지나가는 일이 병실의 환자에게 공포감을 일으키고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환자로 하여금 더 쉽게 산욕열에 희생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2산부인과에서는 사제가 직접 임종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불리한 요인은 없었다. 이에 젬멜바이스는 사제에게 임종실에 드나드는 소리나 모습이 산모들에게 들리거나 보이지 않도록 다른 길로 돌아서 다닐 뿐만 아니라 종소리도 울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럼에도 제1산부인과의 산욕열 사망률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제 젬멜바이스는 제1산부인과에서는 산모가 바로 누워서 분만하는데, 제2산부인과에서는 옆으로 누워서 분만한다는 사실을 관찰하고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분만 자세의 차이가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는지 시험해보았다. 그는 제1산부인과의 산모들도 옆으로 누워서 분만하도록 해보았으나 역시 사망률에는 영향이 없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제1산부인과의 악명만 높아지던 1847년 초, 우연한 사건이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젬멜바이스의 동료 의사인 콜레슈카(Jakob Kolletschka)가 검시를 하다가 그를 도와주던 학생의 칼에 손가락이 찔려 상처를 입었는데, 그 후 콜레슈카는 산욕열 희생자들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는 병을 앓다가 죽었다. 당시에는 그런 식 의 감염이 미생물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이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젬멜바이스는 학생의 칼에 의해 콜레슈카의 혈관에 투입된 죽은 사람에서 나온 물질이 콜레슈카의 생명을 빼앗아간 병을 일으켰다고 확신하였다. 더욱이 콜레슈카의 증세가 진행된 과정과 산욕열 환자를 치료하면서 확인했던 증세의 진행 과정의 유사성은 젬멜바이스로 하여금 산욕열 환자도 똑같은 종류의 패혈증 때문에 죽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고 보니 자기 자신과 동료 의사들 그리고 의학부 학생들이 산욕열을 전염시키는 물질을 옮기는 장본인이었다. 왜냐하면 그와 동료 의사들은 검시실에서 시체를 해부하고서 곧장 병실로 돌아가 손만 대강 씻은 채 시체에서 나는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사라지기도 전에 진통하는 산모들을 진찰하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젬멜바이스는 자신의 생각을 시험에 붙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손에 묻은 전염성 물질을 화학적으로 파괴시킴으로써 산욕열이 예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의학부 학생에게 진찰하기 전에 손을 표백분 용액으로 씻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산욕열에 의한 사망률은 급속도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1848년에는 2산부인과의 사망률은 1.33%인 반면에 제1산부인과의 사망률은 1.27%까지 내려갔다.
젬멜바이스는 왜 제2산부인과의 사망률이 그처럼 낮았는지를 자신의 가설로 설명할 수 있었다. 제2산부인과에 입원한 산모들은 조산원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조산원의 교육 과정에는 해부학 실습이 없었던 것이다. 덧붙여 이 새 가설은 노상 분만한 산모들의 사망률이 더 낮았던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다. 신생아를 안고 도착한 산모는 입원 후에 거의 진찰을 받지 않기 때문에 감염을 피하기에 이미 입원한 산모들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었던 것이다.
젬멜바이스는 자신의 다른 임상 경험과 연결하여 곧 자신의 가설을 확장하였다. 언젠가 그와 동료 의사들이 세밀히 손을 소독하고 자궁경부에 생긴 화농성 종양으로 고생하는 진통 중의 산모를 진찰한 다음, 손을 새로 소독하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 씻고 같은 병실에 있는 열두명의 다른 산모를 진찰한 적이 있는데, 그 열두명의 산모 중 열한명이 산욕열로 죽은 일이 있었다. 젬멜바이스는 이를 근거로 산욕열이 죽은 사람에서 나온 물질 뿐만 아니라 산 사람에서 나온 부패한 물질에 의해서도 일어난다고 결론을 내렸다.
2. 가설-연역적 방법
다음은 한 대학물리학 교과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물리학 이론은 정확한 수치적인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론의 타당성(validity)은 궁극적으로는 예측이 실험을 통하여 검증되느냐에 달려있다. 이론은 모든 실험적 시험(experimental tests)을 통과할 때만 그럴듯하다고 여겨지고 받아들여진다”(Benson 1996, 4/t5. 강조는 추가)
위의 인용문은 어떤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예측이 시험을 통과하여야 그 이론을 수용할 수 있다는 방법론적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가설에서 도출된 예측과 일치하는 사실은 그 예측을 도출해낸 가설을 입증하며(confirm), 예측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혀진 사실은 그 가설을 반입증한다(disconfirm). 언급한 젬멜바이스의 이야기는 이러한 구도에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다음 그림은 젬멜바이스가 수행한 가설 시험의 절차를 간략히 보여준다.
눈썰미가 있는 이는 눈치챘겠지만 제시된 시험 과정에서 등장한 예측은 가설 그 자체로부터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시체에서 나온 물질이 산욕열의 원인이다”라는 가설에서 “산욕열 발생율이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려면, 중간에 “시체에서 나온 물질을 제거한다”와 “표백분 용액은 시체에서 나온 물질을 제거할 능력이 있다”와 같은 정보가 추가되어야 한다. 여기에 추가되는 정보들은 다른 관찰보고일 수도 있고, 이미 잘 받아들여지고 있던 다른 이론일 수도 있고, 계의 초기조건에 대한 가정일 수도 있다. 이를 통틀어 편의상 보조 가설(auxiliary hypotheses)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젬멜바이스의 탐구과정은 다음과 같이 형식화할 수 있다.
다음의 경우에 한하여 관찰 보고 e는 A에 상대적으로(respect to a A) 가설 h를 입증한다.(Glymour 1980, 322)
(a) e는 참이다.
(b) h&A가 일관적이다.
(c) h&A는 e를 함축한다.
(d) A는 e를 함축하지 않는다.
만약 e가 거짓이면, 관찰 보고 e는 보조가설 A에 상대적으로 가설 h를 반입증한다.
입증에 관한 이러한 이론을 가설-연역법이라 하며, 헴펠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조금씩 다른 정식화 판본을 내어놓았다. 그러나 세부적인 정식화가 어떤 것이건 가설-연역법은 다음과 같은 부분을 포함한다. 하나, 입증 혹은 시험의 대상은 주어진 가설이다. 둘, 가설 및 보조가설 등으로부터 관찰가능한 문장을 연역적으로 도출한다. 셋, 도출된 문장을 관찰 결과를 기술하는 문장과 비교한다. (Nola & Sankey 2007, 170)
가설-연역법은 그 이름 및 형식화로부터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증거와 가설 사이의 관계를 연역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강점을 가진다. 하나, 잘 정립된 연역 원리를 입증 관계에 끌어들임으로써 귀납적 탐구의 실행을 보다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준다. 가설-연역법의 구조 내에서 증거 문장은 가설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어야 한다. 둘, 가설-연역법은 실제 과학적 실행을 잘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 경험적 가설을 수용하는가? 이 절의 도입부에서 인용한 교과서 저자의 말처럼 가설 및 보조 가설에 의해 도출되는 관찰 문장의 참이 경험적으로 확인되면 가설을 수용하고, 관찰 문장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가설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간단한 예를 살펴보자.
h: 이 용액은 산이다.
A: 청색 리트머스 시험지에 산을 떨어트리면 붉게 변한다. 그리고 청색 리트머스 시험지에 이 용액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e: 청색 리트머스 시험지가 붉게 변했다.
위의 예에서 e는 h&A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된다. 실제로 문제의 용액을 리트머스 시험지 위에 떨어트렸을 때 시험지가 붉은색으로 변하면, e는 참이며 h를 입증한다. 반면 시험지의 색이 변하지 않는다면, e는 거짓이며 h는 반입증된다. 이 용액의 액성은 아마 중성이나 염기성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설-연역법은 다음과 같은 난점을 지니고 있다.
3. 가설-연역법의 문제
1) 돌아온 까마귀 역설
이미 우리는 까마귀 역설에 대해 살펴본 적이 있다. 가설-연역법은 까마귀 역설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가설-연역법의 구조 내에서는 다음과 같이 검지 않은 까마귀의 발견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
h: 모든 까마귀는 검다. ((x)(Rx⊃Bx))
A: a는 검지 않다. (¬Ba)
e: a는 까마귀가 아니다. (¬Ra)
가설-연역적 방법에서 a라는 대상이 검지 않다는 보조 가정에 상대적으로 a가 까마귀가 아님이 확인된다면, 바로 이 사실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 이는 만약 우리가 가설-연역법이 과학의 방법임을 인정한다면, 빨간색 스틸레토가 “모든 까마귀가 검다”를 입증한다는 주장도 인정하여야 함을 뜻한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다시 젬멜바이스의 연구를 살펴보자. 젬멜바이스가 제안한 가설을 일단 “시체에서 나온 물질에 접촉하면 산욕열에 걸린다”라고 하자.[3] 이제 엘리자베스라는 산모가 있는데 그녀는 산욕열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자.
h: 시체에서 나온 물질에 접촉하면 산욕열에 걸린다. ((x)(Mx⊃Cx))
A: 엘리자베스(e)는 산욕열에 걸리지 않았다. (¬Ce)
e: 엘리자베스는 시체에서 나온 물질과 접촉하지 않았다. (¬Me)
가설-연역법의 구조를 따르면, 산욕열에 걸리지 않고 시체에서 나온 물질과도 접촉하지 않은 산모 엘리자베스는 젬멜바이스의 가설을 입증한다. 실제로 젬멜바이스가 산욕열에 걸리지 않은 2산부인과의 산모들을 자신의 가설을 지지하는 사례로 여겼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큰 문제없는 결론인 것 같다. 까마귀 역설이 나타난다는 점이 큰 흠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의 사례를 보라.
A’: 엘리자베스의 구두(s)는 산욕열에 걸리지 않았다. ¬Cs
e’: 엘리자베스의 구두(s)는 시체에서 나온 물질과 접촉하지 않았다. ¬Ms
여기서 시체에서 나온 물질과 접촉하지 않은 엘리자베스의 구두는 젬멜바이스의 가설을 입증하는가? 가설-연역법의 구조에서 e’는 가설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는 정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이다.[4]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통상 우리는 엘리자베스의 사례는 가설을 입증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엘리자베스의 구두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명확히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설-연역법은 이러한 차이를 보여주는 데에 실패하는 것 같다.
2) 무관한 연언의 문제(problem of irrelevant conjunction)
가설-연역법의 핵심에는 증거는 가설로부터 연역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바로 이 조건이 이상한 문제를 불러온다. 만약 가설 h'가 가설 h를 함축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h와 A로부터 e가 도출된다면, h를 함축하는 h’ 역시, A와 함께 e를 도출할 수 있다. 즉 e가 A에 상대적으로 h를 입증한다면, h를 함축하는 가설 역시 입증한다. 이를 ‘역귀결 조건(converse consequence condition)’이라 부른다.
이 역귀결 조건은 얼핏 보면 매우 건전한 조건인 것처럼 보인다. 뉴턴의 중력 및 운동 법칙은 갈릴레오의 낙체의 법칙 및 케플러의 행성 운동의 법칙들을 함축한다. 그리고 우리는 통상 갈릴레오의 법칙이나 케플러의 법칙을 입증하는 관찰 결과를 뉴턴의 중력 법칙을 입증하는 것으로 여긴다. 다른 예로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행성 운동에 관한 일반 법칙이 어떤 관찰 보고에 의해 입증된다면, 우리는 그 관찰 보고가 상대성 이론도 입증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의 사례를 보면 역귀결 조건은 매우 이상한 결과를 산출해 낸다.
h'=h&g
h: 이 용액은 산이다.
g: 지구는 둥글다.
A: 청색 리트머스 시험지에 산을 떨어트리면 붉게 변한다. 그리고 청색 리트머스 시험지에 이 용액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e: 청색 리트머스 시험지가 붉게 변했다.
앞선 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e는 A에 상대적으로 h를 입증한다. 그리고 역귀결 조건 하에서 e는 A에 상대적으로 h’(=h&g)도 입증한다. 다시 말해 청색 리트머스 시험지가 붉게 변했다는 관찰 보고가 “이 용액은 산이며 지구는 둥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은 매우 이상해 보인다. e가 정말로 h’를 입증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이 가설-연역법의 구도 내에서는 관찰보고와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가설이 무임승차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다. 이를 ‘무관한 연언의 문제’라고 부른다. 이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아래와 같은 특수 귀결 조건(special consequence condition)까지 받아들이면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Hempel 1965, 31-33/t63-66)
(SC) 만약 e가 가설 h를 입증하면, 그것은 또한 h가 함축하는 가설을 입증한다.
이 특수 귀결 조건이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만약 뉴턴의 법칙이 케플러의 법칙을 함축한다고 하면, 뉴턴의 법칙을 입증하는 사례는 케플러의 법칙 또한 입증한다는 것이다.[5] 이 역시 건전한 조건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귀결 조건과 특수귀결 조건이 합쳐지면 관찰 자료 e는 아무 가설이나 입증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우선 h가 A와 결합하여, e를 도출한다고 하자. 그리고 e가 참이라고 하자. 이러면 e는 h를 입증한다. 그리고 h&g는 h를 함축하므로, 역귀결 조건에 따라 e는 h&g 역시 입증한다. 이제 특수귀결 조건을 적용하면 e는 g를 입증한다. 앞의 예에서, 청색 리트머스 시험지가 붉게 변했다는 관찰 보고가 “이 용액은 산이고 지구는 둥글다”는 물론 “지구는 둥글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이다. 우리는 역귀결 조건과 특수 귀결 조건 둘 중 적어도 하나는 포기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을 포기하여야 할까?[6]
3) 임의의 가설을 입증하는 또 다른 방법
관찰보고 e가 참이라고 하자. 그리고 어떤 가설 g에 대해 g가 ¬e에 의해 함축되지 않은 임의의 일관적인 문장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관찰보고 e는 참인 보조가설 “g⊃e”에 상대적으로 가설 g를 입증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다음의 예를 참고하라.
e: 이 개는 젖을 먹는다.
g: 지구는 둥글다.
g⊃e: 지구가 둥글면 이 개는 젖을 먹는다.
관찰보고 e, 즉 "이 개는 젖을 먹는다"가 참이라고 하자. 이때 ¬e, 즉 “이 개는 젖을 먹지 않는다”는 g를 함축하지 않는다. 그리고 “g&(g⊃e)”는 e를 함축하며 “g⊃e”는 e를 함축하지 않는다. 2절에서 제시한 가설-연역법의 입증 기준에 따르면, 이 상황에서 “이 개는 젖을 먹는다”는 관찰 보고는 “지구는 둥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 이는 다양한 임의의 가설에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참인 관찰보고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통해 무한히 많은 가설을 입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설-연역법에는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4. 요약적 결론
젬멜바이스의 연구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가설-연역법은 과학의 대표적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설-연역법의 구조적 접근을 받아들였을 경우, 매우 이상한 결론들이 도출된다. 다시 말해 가설-연역법에는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새로운 입증 이론이 필요한 것 같다.
덧붙임 1. 가설-연역적 접근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형식논리학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데에 있다. 따라서 가설-연역법은 과학적 가설이 충분히 명료하고 그 구조가 형식논리학의 도구로 분석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과학 이론 및 가설이 형식논리학을 도구로 써서 분석될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한가? 과학 이론의 내용(contents)은 생각보다 불분명하고 형식논리학만으로는 분석되지 않는 것 같다. 엘리자베스와 엘리자베스의 구두 사례를 보라. 형식적 분석이 전적으로 쓸모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덧붙임 2. 가설-연역법을 비롯한 구조적 접근의 특징 중 하나는 선험적(a priori) 접근이라는 점이다. 관찰보고와 가설 사이의 증거적 관계는 관찰보고, 보조가설, 가설이 결정되면 선험적으로 결정되며,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증거-입증 개념이 그런 것인가?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쓸 것이다.
참고문헌
Benson, Harris (1996), University Physics, Chichester, New York: Wiley. 번역 『대학물리학』, 1998, 물리교재편찬위원회 역, 청문각: 서울.
Glymour, Clark N. (1980), “Discussion: Hypothetico-Deductivism is Hopeless”, Philosophy of Science, 47(2), 322-325.
Hempel, Carl G. (1965), Aspects of Scientific Explanation and Other Essay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New York: The Free Press. 번역 『과학적 설명의 여러 측면 그리고 과학철학에 관한 다른 논문들』, 2011, 전영삼, 여영서, 이영의, 최원배 역, ㈜나남: 경기도 파주.
Hempel, Carl G. (1966), Philosophy of Natural Science, 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Inc.. 번역 『자연과학철학』, 2010, 곽강제 역, 서광사: 경기도 파주.
Nola, Robert & Howard Sankey (2007), Theories of Scientific Method: An Introduction, Montreal & Kingston: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그림 출처
Fig.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gnaz_Semmelweis_1860.jpg
Fig.2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Yearly_mortality_rates_1841-1846_two_clinics.png
Fig.3 자체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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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절에서 소개하는 젬멜바이스의 연구 과정은 헴펠의 책을 참고하여 요약하였다. Hempel (1966), 3-6/t21-26.
[2] 여기서 '가설'은 일반적 법칙이나 더 복잡한 진술들의 집합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개별 사건 혹은 사실에 대한 단순한 기술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글을 포함하여 이후의 글에서 '가설'은 그것이 얼마나 복잡한지, 얼마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는 지에 상관 없이 경험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진술 또는 경험적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진술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할 것이다.
[3] 시체에서 나온 물질에 접촉한 산모, 다시 말해 1산부인과에 산모 모두가 산욕열에 걸린 것은 아니므로, 이러한 정식화가 적절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오히려 “산욕열에 걸렸으면 시체에서 나온 물질에 접촉하였다”가 더 나은 정식화일 수도 있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젬멜바이스의 가설은 다음과 같이 좀 더 많은 추가 조건이 붙은 가설로 처리하여야 할 것 같다. “이러저러한 조건 하에서 시체에서 나온 물질에 접촉하면, 산욕열에 걸린다.” 혹은 통계적 가설로 처리할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조건 하에서 시체에서 나온 물질에 접촉하면, x%는 산욕열에 걸린다.” 그러나 가설을 어떻게 정식화하건 여기서는 논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4] 가설을 “산모이고 시체에서 나온 물질에 접촉하면 산욕열에 걸린다((x)((Px&Mx)⊃Cx))”와 같이 수정하여 해결하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x)((Px&Mx)⊃Cx) & ¬Cs)⊃(¬Ps∨¬Ms)”이므로 엘리자베스의 구두가 산욕열에 걸리지 않았는데 임산부가 아니거나 시체에서 나온 물질에 접촉하지 않았다(¬Cs&(¬Ps∨¬Ms))고 하면, 역시 가설의 입증 사례가 된다. 그런데 엘리자베스의 구두는 산욕열에 걸리지도 않으며 임산부도 아니기 때문에 이는 저절로 만족한다.
[5] 엄격하게 말하자면, 갈릴레오의 법칙(G)과 케플러의 법칙(K)을 뉴턴의 중력 및 운동법칙(N)으로부터 연역하기 위해서는 근사를 포함한 특정한 일련의 보조가설(A)들을 도입하여야 한다. 그러나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이 점은 무시하도록 하자. 이러한 무시가 불편하다면 다른 연역적 관계를 끌고와도 좋다.
[6] 이 문제를 제기한 헴펠은 역귀결 조건을 포기하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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